그림책 『해피버쓰데이』는 주인공 제브리나가
‘얼루룩덜루룩탈탈’이라는 병에 걸린 채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이야기다.
이모가 선물한 마법의 옷장은 매일 새로운 옷
—초록 스커트, 폼폼 베레모, 오렌지 나팔바지—을 꺼내주며
제브리나를 밖으로 이끈다.
생일날, 단 하나의 고깔모자가 등장하며 특별한 하루를 예고한다.
삶의 활기를 되찾는 따뜻한 여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서점 한 켠, ‘한국에서 가장 재밌는 책’ 목록에 있던 표지가 눈에 띄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해피버쓰데이』.
그 자리에서 두 번을 읽고, 망설임 없이 집으로 데려왔다.
다시 한번, 이야기를 감각하는 거장의 손길에 반해버렸다.
이 책에는 별다른 해설이나 설명이 없다.
하지만 작가님은 늘 그렇듯, 독자의 해석을 너그럽게 열어두신다.
그 덕분에, 나도 나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꿰어본다.
🦓 얼루룩덜루룩탈탈, 제브리나의 병
‘얼루룩덜루룩탈탈’—유쾌한 의성어 같지만,
어딘가무기력의 리듬이 담긴 이 병명.
반복되는 일상, 감흥 없는 시간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이 병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는 마음의 겨울이다.
하지만 ‘탈탈’로 끝나는 병명은 희망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털어내고 새로 시작할 날이 올 거라는,
세상 모든 제브리나를 위한 다정한 응원처럼 들린다.
🎉 생일, 고깔모자 하나로 충분한 날
생일 전날, 마법의 옷장은 단 하나의 고깔모자를 내민다.
새 옷 없이 외출이라니, 살짝 서운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 고깔모자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오늘은 너 자체로 충분해.”
생일은 화려한 꾸밈이 아닌,
'너'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축하하는 날.
이 장면은 단순한 생일 파티를 넘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일깨운다.
💗 이모, 그리고 미래의 나
이모는 매일 새로운 옷과 외출이라는 ‘회복의 리듬’을 선물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무렵, 주인공은 스스로 옷장을 채운다.
자신의 옷, 자신의 감정, 자신의 삶으로.
그 순간, 이모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내가 꿈꾸는 어른, 혹은 미래의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옷장을 선물해줄 이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나도 매일, 나만의 옷장을 짓고 있다.
내게는 용기의 옷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따뜻한 위로의 옷을 입혀주기 위해.
/📣 당신에게 전하는 한 벌의 옷
『해피버쓰데이』는 생일을 빌미로 삶의 회복을 담은 그림책이다.
백희나 작가는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일상의 작은 변화가 얼마나 큰 마법을 불러오는지 보여준다.
지금, 얼루룩덜루룩탈탈 병에 걸린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이, 그리고 이 글이,
당신이 오늘 입을 따뜻한 한 벌이 되기를 바란다.
Image by.Hey Diddle Diddle and Baby Bunting Pl.2 (1887) Randolph Caldecott (English, 1846 –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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