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종종 찾는다.
이번엔 내가 먼저 끌렸다.
책 소개를 읽고 바로 구입했고,
첫 장의 작가 인사는 나를 또 한 번 끌어당겼다.
"Hello. You're reading this book from the first page. Impressive."
“안녕. 당신은 책을 처음부터 읽는군요. 인상적입니다.”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 독자에게 읽는 방식의 주도권을 돌려주는 설계.
전직 디자이너, 나는 일단 별 다섯 개 주고 시작한다.
그런데 이 책, 그저 ‘좋은 말 모음’이 아니다.
소년, 두더지, 여우, 말—
이 특별한 네 친구의 문장과 감정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나’를 보게 된다.
1. 🧒 소년 – 불안과 질문으로 걷는 존재
“Sometimes I worry you'll all realize I'm ordinary.”
(가끔은,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모두 알게 될까 봐 걱정돼.)
소년은 자꾸 묻는다.
그리고 자꾸 자신을 확인한다.
질문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안해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요즘 계속 되뇌는 질문은 뭘까?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를 돌려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2. 🐾 두더지 – 케이크에 집착하는 철학자
“I’m so small,” said the mole.
“Yes,” said the boy, “but you make a huge difference.”
(나는 너무 작아, 두더지가 말했다.
"맞아, " 소년이 말했다, "하지만 너는 큰 변화를 만들어내.)
두더지는 귀엽다.
…라고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실 그는 케이크에 집착한다.
본능에 충실하고,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서 정직함의 용기가 느껴진다.
케이크는 욕망이자 위안이자,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다.
나는 요즘, 어떤 케이크를 먹고 싶어 질까?
누군가에게 “너는 특별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순간은?
3. 🦊 여우 – 말 없는 동행의 힘
“We don’t know about tomorrow, but we’ve got each other today.”
(내일은 모르지만, 오늘 우리는 함께 있어.)
여우는 거의 말이 없다.
처음엔 경계하고, 멀찍이 떨어져 있다.
하지만 곁을 내어주고 나면,
어떤 말보다 깊은 위로를 준다.
말 없는 존재가 위로가 되려면,
곁에 오래 있어야 한다.
여우는 그걸 해낸다.
나는 누구에게 그런 ‘여우’였던 적 있을까?
말없이, 조용히 곁에 머무는 연습을 해본 적 있는가?
4. 🐴 말 – 가장 어른스러운 존재, 다정함의 극치
“You’ve been through many storms to get here.
You don’t see it, but you are brave and magnificent.”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는 수많은 폭풍을 지나왔어.
넌 모르겠지만, 너는 용감하고 멋진 존재야.)
말은 조용하다.
힘이 세지만, 절대 휘두르지 않는다.
그의 말은 빠르지 않고, 크지도 않다.
하지만 딱 그 순간에 필요한 한마디를 건넨다.
‘괜찮아’, ‘이미 충분해’
이 말들이 주는 다정한 안정감.
나는 나에게 말처럼 말해본 적 있을까?
내가 지나온 ‘폭풍’을 스스로 인정해 줄 수 있을까?
이 네 친구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으로 하나의 길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이들을 따라 걷다 보면,
내 안의 말, 여우, 두더지, 소년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음 글에서는,
그 안에서 '내 케이크'를 찾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팬이 되어버린 나는,
그의 글과 그림을 꼭 감상해보시길 추천한다.
📍@Charlie Mackesy Instagram
Image by. Egel met jongen (1878 - 1914) by Theo van Hoyt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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