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사소할지 몰라도
내겐 나를 버티게 해주는 구석이 있다.
《나의 취향일기: 믿는 구석》은
그 작은 구석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기록이다.
나를 잘 모르겠는 날,
어떻게 나를 안아줘야 할지 막막한 사람에게
이 조용한 취향일기가
하나의 지도처럼, 작은 서랍장처럼
당신 곁에 남았으면 좋겠다.
이 시리즈의 출발점은 한 의사의 인터뷰다.
《자존감 수업》으로 잘 알려진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롱블랙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존감은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주관적’ 평가.”
그러니 자존감을 지키는 일은
'내가 나에게 어떤 관점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그 관점이 흔들릴 때,
사람은 작은 것을 붙잡는다.
윤홍균 전문의의 다소 귀여운 '믿는 구석 리스트' 는 이렇다.
1. 시장표 순댓국 한 그릇 : 5천 원의 회복 버튼
2. 월 배당 ETF : 매달 도착하는 '몇천 원의 설렘'
3. 내향인 단톡방 : 아침마다 인사를 건네는 '느슨한 소속감'
그 목록을 보며 깨달았다.
나도 나만의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걸.
게다가 꽤 많았다.
당신만큼은 당신 편에 서세요
나는 현재
5년 넘게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 중이다.
무감각증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바닥을 찍고
지금은 조금씩 우상향 중이다.
완벽주의라는 안경을 벗고
내 약점을 글로 드러내는 일이
여전히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본다.
- 계획이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완벽주의
- 실수나 실패를 겪으면 끝까지 나를 몰아붙이는 자기비난
- 친말함을 원하면서도 거기두기를 택하는 회피
-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외로움에 무너지는 감정 모순
- 겉으로는 유능해 보이지만 속은 늘 비어 있는 이중성
- 성취를 앞에 두고 일부러 피하는 회피적 태도
- 감정을 느끼기보다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이해 중독'
- 자기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위안을 찾는 자기혐오
그리고 나는 작년부터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다.
- 완벽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하루를 선택하기
- 감정을 분석하는 대신 그냥 느끼고 흘려보내기
- 스스로에게 ‘엄마처럼’ 따뜻하게 말 걸어주기
- 몸을 벌로 다루지 않고, 살아가는 동반자로 돌보기
- 성취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를 연습해 받아들이기
자존감을 지키는 나의 '믿는 구석들'
그런 날들을 지탱해준 건
다름 아닌 사소한 '믿는 구석들'이었다.
- 밤의 허기
- 베티붑 케이스
- 마무리된 '브런치북' 연재글
- 연필 냄새
- 사운드 장비
- 음식과 술, 분위기
- 종이와 만년필
- 한 달에 한 번 받는 네일아트
- 샤워 후 바디로션
- 무의미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남긴 복리효과
- 최애 쇼핑몰
- 맨 마지막 서랍장은 나의 도토리창고
나는 이제,
그 사소한 기쁨들을 모아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신도 당신만의 믿는 구석이 있기를,
그리고 그 구석이 당신을 지켜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