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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간 클래식/도망자의 서재

[인문학] III. 한국어의 한계인가, 사용자의 문제인가 | 라틴어 수업, 한동일

by 작은 도망 2025. 5. 12.
2025.05.09 - [도망자의 서재] - II. 이성은 없다, 수습반장만 있을 뿐 | 『라틴어 수업』 한동일

사진: Unsplash 의 ibmoon Kim

“몇 마디 단어로도 소통할 줄 아는 어린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한동일, 『라틴어 수업』 라틴어의 고상함 中

조용히 웃음이 터졌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대단히 정직하다.
"싫어", "안 해", "나 먼저 할래"— 그들은 말로 사람을 돌려세우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어떨까.
정작 '글자'는 많이 알지만, '표현'에는 서툴다.

이번 3편에서는 ‘언어와 문화’,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사용하는 한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문자의 시작은 생각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문자를 처음 사용한 목적은 사유가 아니었다.
계약서, 세금, 재고 정리 —
모두 ‘기록을 남기기 위한 상업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 실용적인 도구는 곧 법과 정치, 철학의 바탕이 되었고,
언어는 도구를 넘어 사고를 고정하는 ‘틀’이 되었다.


말은 생각을 닮고, 사회를 만든다

한국어는 감정 표현 어휘가 유난히 풍부하다.
'서운하다', '아쉽다', '답답하다', '뭉클하다', '시원섭섭하다'처럼
두 감정이 섞인 미묘한 상태도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 단어들을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쓰고 있을까?

나와 친구의 대화는 서로를 너—무 배려한 나머지,
의견을 묻기만 하다 결론 없이 다음 주제로 넘어가곤 한다.

그래서 가끔은 “야, 각자 하고 싶은 것만 딱 말해.” 하며
일종의 돌직구 타임을 갖는다. 10년 지기의 생존형 소통이랄까?

이건 우리만의 이야기 아니다.
한국어의 높임말 체계와 특유의 간접화법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수직적 관계, 집단주의적 소통 방식과 연결되어 왔다.
'한국어'가 '한국인의 기질'을 만든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어떨까?


같은 언어, 다른 문화

예를 들어, 인도네이사의 한 소수민족은
한국어를 제2의 언어로 사용한다.
'한글 최초 수출'이라며 화제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그들은 존댓말은 배우지만 감정 표현은 훨씬 더 직접적이다.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그 언어를 쓰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언어는 문화와 태도에 따라 다르게 말해지고, 다르게 작동한다.


말이 아닌 말하는 태도

물론 언어는 처음에 사고의 틀을 만든다.
하지만 그 이후는 전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말하느냐,
어떤 말을 고르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은,
‘배려'를 이유로
정확함과 진심을 감추고
관계에서 '나'를 지워내며
오히려 오해를 키우고 있진 않을까?

'나'와 우리의 '관계'를 지키는
단어를 선택할 줄 알고
다정하게 단호함을 표현하는 연습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Thanks to At the Circus Fernando: Medrano with a Piglet (ca. 1889) by Henri de Toulouse–Lautr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