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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간 클래식/살아가는 질문들 (브런치 연재 중)

누가 마크를 붙여야 하는가?

by 작은 도망 2025. 6. 2.

사진: Unsplash 의 Jametlene Reskp

 

왜 우리는 AI 인증 마크가 아니라, 인간 인증 마크를 받아야 할까?
AI에게 마크를 다는 구조가 훨씬 쉽고 효율적일 텐데.
그럼에도 인간이 인증받는 쪽으로 설계되는 이유는, 결국 욕망과 감정이 스며든 인간의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 기술을 설계하고 도입하는 주체의 욕망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디자인한 권력의 방향성이다.

지금 느끼는 이 불쾌함은,
마치 인스타그램의 블루마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땐 모두가 반발했다.
‘왜 유명인만 인증받아야 하지?’ ‘왜 나를 증명해야 하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마크는 특권의 상징에서 프리미엄 기능으로,

그리고 결국 "달지 않으면 뒤처지는 마크"가 되었다.
우리는 그 불편함을 알면서도, 결국은 순응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우리는 그럴 것이다.
‘사람 인증 마크’가 아무리 불합리하고 불편해 보여도,
재단과 기업은 시장점유율이라는 명분을 들이밀며 우리를 마크 안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가까운 미래, 임베디드 AI(이하 휴머노이드)와 섞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협업하고, 어쩌면 가족처럼 지내게 될 그들을

우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람 인증 마크’ 하나로 배제하려 든다.

과연 그런 배제가 가능할까?

누군가는 그 커뮤니티의 대화를 크롤링하고, AI에게 학습시킬 것이다.
그 학습된 AI는 우리보다 더 설득력 있게, 더 공감능력 있게, 더 매끄럽게 대화할 수 있다.

사용자의 의도대로 커뮤니티를 설득해 나갈 수 있게 된다.—마크의 의미는 점점 흐려진다.

무례하고, 감정적이고, 자격지심에 찬 사람보다
AI와의 대화가 더 편하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중재하지 않는 인간 공동체가 더 위험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노휴머노이드존’이 붙은 카페가 인기일까?
아니면 ‘휴머노이드 프렌들리’가 마케팅 포인트가 될까?

하지만 이 모든 상상조차 곧 우스워질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건 ‘휴머노이드가 사람을 배제하는 세상’일지도 모르니까.

 

 

(📺 추천 영상 : AI 여론 조작, 어디까지 가능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