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편리함, 누구의 대가인가
지난 편에서 AI 창작과 저작권 문제를 고민했다면,
이번엔 그 도구 자체에 질문을 던져본다.
사람들은 AI를 '중립적인 도구'로 여긴다.
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그걸 쥔 사람이 문제라는 논리처럼.
하지만 AI는 결코 단순한 칼이 아니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따라 형태를 바꾸고,
누군가의 시간과 에너지, 심지어 저작물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 모든 과정은 막대한 전기 에너지를 소모한다.
AI 학습에 사용되는 전략량은 상상을 초월하며,
이는 기후 위기와 자원 고갈이라는 '현재 진행 중'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게다가 전 세계의 수많은 콘텐츠, 이미지, 이야기들이 '허락 없이' 수집되었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와 노동자들은 권리 없이 기여했고,
지금도 누군가는 저임금으로 데이터를 선별하고 정제하는 노동 중이다.
“기존의 전자기기는 전기를 쓰는 기계였고,
AI는 전기를 쓰는 의사결정 장치다.
우리가 AI에게 책임을 묻는 건
그게 '판단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정말 AI는 중립일까? 우리의 편리함은 어떤 대가와 연결되어 있는가?"

당신의 AI 사용법은 누구를 닮았나
AI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기술을 어떤 '관계 속'에서 받아들일지 고민해야 한다.
그 시작은 사소할 수 있다.
- AI를 사용할 때 불필요한 반복 요청을 줄이기
- 에너지 효율이 높은 모델 사용하기
- 오픈 소스 AI 프로젝트를 지지하기
- 숨은 노동자와 자원을 한 번 떠올려보기
이러한 "작은 실천"들 속에 인간은 AI와의 경계를 조금씩 그어간다.
그리고 그 경계 위에서 묻게 된다.— “AI의 판단은 정말 충분한가?”
기술의 판단은 정교해지지만, 그 결과에 책임지는 건 여전히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윤리라는 기준을 떠올리게 된다.
윤리는 논리로만 판단되지 않는다.
윤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태도다.
편향을 의심하고, 출처를 확인하고
"이건 맞는 걸까?"라고 한 번 더 묻는 감각.
AI에게 판단을 맡기는 순간,
우리는 고민을 생략하는 인간이 된다.
AI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다
공존? 우리는 기술과 공존한 적이 없다.
기술은 늘 인간이 '조율'해 온 대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조율을 게을리하고 있다.
AI는 선택지를 줄 수 있지만, 결정을 대신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는 너무 쉽게 기술의 권위에 안긴다.
사용은 하지만, 책임지지 않는 태도.
그러니 기술은 점점 인간을 닮은 채 인간을 앞지른다.
당신의 편리함은 누구의 불편함과 맞닿아 있는가?
이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묻는 것이다.
우리는 AI를 통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 통제받고 있는가?
Image by. Zehn Jahre deutscher Not (1803-1812) Pl.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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