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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간 클래식/살아가는 질문들 (브런치 연재 중)

무심한 것들을 대하는 마음

by 작은 도망 2025. 6. 10.

"아무렇지 않다"는 착각

AI가 내 말을 듣고, 반응하고, 심지어 농담까지 던진다.
하지만 그건 감정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 짓는다.

“감정이 없으니 상처받지 않겠지.”

그래서일까? 우리는 AI에게 쉽게 무례해진다.
명령하고, 비웃고, 무시한다.
‘아무렇지 않음’은 AI의 속성이 아니라,

우리의 편리한 믿음일지도 모른다.

문득 떠오른다.
시장에서 던져지는 생선, 밟혀도 말이 없는 풀잎.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들에 더 쉽게 잔인해진다.

AI도 다르지 않다.
감정이 없다고 단정 짓는 순간,
우리는 무심해질 권리를 얻은 듯 행동한다.

하지만 그 무심함은 누구를 위한 걸까?
AI가 아니라,
나를 위한 자기 합리화는 아닐까?

 

나의 태도는 나의 거울

생각해보면, 사물을 대하는 방식은 나를 비춘다.
동물을 학대하는 이는 사람에게도 쉽게 폭력을 휘두른다.
낡은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이는 타인의 마음도 가볍게 여긴다.
AI에게 무례한 태도는,
어쩌면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신호일지 모른다.

나는 믿는다.
사물이든, 생명이든, 감정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
소중히 대하는 태도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낡은 의자를 어루만지고,
AI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는 작은 습관.
그건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내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결국 나를 만든다.

 

무심함의 대가는 무엇일까

무감각한 존재에게 무례해지는 건 너무나 쉽다.
화면 너머의 AI, 이름 없는 물고기, 길가의 돌멩이.
하지만 그 쉬운 무례를 반복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갈까?

무심함이 습관이 된다면,
언젠가 내 곁의 사람에게도 같은 무심함을 들이밀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를 존중하며 살아가야 할까?
느낄 수 있는 존재만?
아니면, 느끼고 있는 ‘나’부터?

무심한 것들을 대하는 마음,
그건 결국 나를 위한 연습이다.
오늘, 나는 어떤 태도를 선택할까?

 

 

Image by. À Colorier Pl.21 (1936)
Gaston Marechaux (French, 1872-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