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한 사람을 보면 답답했다.
무례하거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모임을 다녀오는 길, 내가 차 안에서 잠깐 표정이 굳어 있으면
남편은 묻는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 세상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 짧은 대화 안에 기분 나쁜 순간이 있었는지조차, 그는 알지 못한다.
“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정말 잘했네요.”
상사의 미세 공격에도,
지하철 안의 불편한 스침에도
그들은 무심히 지나친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 얼음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들은 감정을 통과하고, 나는 감정에 붙잡힌다.
비슷한 넋두리를 나누며 알게 됐다.
우리의 회사생활은 고만고만했고,
나는 그 안에서 유난히 더 빨리 소진되었다.
그 사람은 그 순간을, 유연하게 통과하고 있었다.
둔감함은 무지가 아니었다.
‘알아도 반응하지 않는 것’과
‘아예 못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
둔감함이 미덕이 되려면,
그 안에는 반드시 ‘느끼고도 흘려보내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게 빠지면, 그것은 공감의 결핍이고, 관계에 대한 게으름일 뿐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터득한 건지도 모른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건,
그 자체로 회복력이다.
내가 생각한 둔감함의 미덕은 이런 것이다:
- 감정의 과잉 소비를 막는다.
-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 실수를 흘려보낼 수 있다.
- 관계를 ‘느슨하게 유지’할 수 있는 능력
나는 HSP다.
예민하고, 까칠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이 기질 덕분에 지금의 일을 하고 있고,
이 기질 때문에 수없이 지쳐왔다.
예전엔 내 모습이 싫었다.
이 성향을 물려줄까 봐, 2세를 갖기조차 망설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세심한 내가 있고, 그 옆에
아주 작은 비율로 둔감한 나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예민함은 관계를 깊게 만든다.
둔감함은 나를 지키는 경계가 된다.
그 두 가지 사이에서,
나는 내 감정을 오래 쓰고 싶다.
날카로운 감정보다, 오래가는 마음이 되길 바란다.
image by. Two merry mariners Pl.0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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