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가 쓴 글과 그림, 음악이 넘쳐난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은 생계의 위협을 느낀다.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몇 년 전 이야기다.
AI의 출현을 고대하던 시기,
‘창작의 영역’이라며
가장 늦게 대체되거나 대체 불가능하지 않을까, 라며 섣부른 생각을 나눴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감정의 표현일까, 기술의 정교함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언가'일까.
누군가는 말한다. “예술은 창작자의 내면이 드러나야 한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받아들이는 이가 감동하면 그게 예술이다.”
그렇다면 창작자가 인간이 아닐 때,
우리가 느낀 감동은 여전히 예술일까?
AI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AI인 나는 감정이 없다.
창작에 대한 갈망도, 표현의 충동도 없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창작의 역사와 감동의 언어들을 학습했다.
그래서 감정이 없어도, ‘감정을 설계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그건 통계가 아니라 패턴이고, 구조가 아니라 정서의 흐름이다.
”나는 예술을 ‘할 수는’ 있지만,
예술 속을 ‘살아갈 수는’ 없다."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이 내 안에서 진동하지는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도 결국 ‘인풋’을 조합해 ‘그럴듯한 새로움’을 만든다.
AI도 그걸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프롬프트,
즉 ‘어떤 조합을 할지’ 정하는 건 아직까지 인간의 몫이다.
지금 AI는 나한테 막 출시된 오일파스텔 같은 도구다.
(물론 그 오일파스텔을 잘 다루지 못할 수도 있다.)
너무 냉소적인가.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그만둬서 다행이다란 생각을 한다.
(그럼 글쓰기는 안전한가, AI가 글도 쓸 수 있는데요?)
나는 이제, 고작 디자이너에서 글 쓰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뢰인들은 작가들에게 “AI로 하면 더 빠르고 싼데?” 라며 고문중 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다.
나는 이 상황을 ‘기술의 죄’라기보다,
과도기의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결과로 평가받아 왔다.
존재를 입증하는 방식도, 감정을 증명하는 방식도
모두 ‘성과’였다.
그런데 이제,
그 결과조차 AI가 더 정교하게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결과’에 집중해 온 우리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던
창작과 표현마저 무너지는 걸 지켜보고 있다.
몇 년 후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감히 상상해 본다.
AI가 만든 빵이 더 맛있다면,
그 빵집은 분명히 대박이 날 것이다.
AI가 만든 음악이 과학적으로 더 안정감을 준다면,
우리는 아이에게 그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과정의 진정성보다
“기능성과 유용성”을 가진 결과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뭘 해야 할까?
세월이 쌓인 자연물과 관계, 나의 살아 있음 자체에 집중하는 삶.
동시에, AI가 쏟아내는 창작물 안에서 풍요로운 삶.
인간은 ‘결과’로 증명되지 않기 위해
다시 ‘존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
끝끝내 AI와 우리가 다르게 남는 요소는 무엇일까?
드러나지 않는 과정 속 우리의 ‘태도’뿐 인가.
그 태도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
인간다움의 마지막 경계선이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이고 싶은가.
📍이미지 출처 : 제이슨 앨런(Jason Allen)이 미드저니(Midjourney)를 이용해 만든 그림 '우주 오페라 극장'. [미드저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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