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를 구독할까, 말까?
이 질문 하나로 시작된 고민이, 내 머리를 망치로 내리친 듯 깨웠다.
"내 강점, 취약점 정도는 AI에게 물어볼 수 있다 쳐.
근데 뉴스레터 구독 여부까지 AI한테 묻다니, 이게 뭐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점점 더 AI에게 묻는다.
이런 질문들, 익숙하지 않은가?
- 결정 대리 요청: “이거 사도 괜찮을까?”
- 감정 통역 요청: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뭐였을까?”
- 의미 해석 요청: “왜 그 상황이 이렇게 불편했을까?”
심리테스트로 자신을 탐구하던 한국인들은
AI에게 취향, 감정, 심지어 삶의 방향까지 묻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세 가지 이유를 짚어봤다.
좋아하는 걸 잃어버린 우리
“심심할 때야말로 좋아하는 걸 찾게 되는 거야.”
이탈리아인, 알베르토가 아들에게 한 말이다.
한국에선 심심할 틈이 없다.
‘해야 하는 일’에 치여 ‘하고 싶은 일’은 뒷전이다.
좋아하는 게 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싫은 것부터 떠올리며,
진짜 원하는 걸 찾아가는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감정을 잊은 어른들
“무안해, 아쉬워, 서운해.”
이런 단어들은 어느새 “짜증 나”로 뭉뚱그려졌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어른을 찾기도
그걸 알려주는 곳도 드물다.
감정이 모호해지면 욕구도 흐릿해진다.
불편했던 순간을 설명하지 못하면,
결국 AI에게 “내가 왜 이렇게 느꼈지?”라고 묻게 된다.
혼자 결정해야 하는 시대
1인 가구, 1인 기업.
이 단어들이 낯설지 않은 지금,
음식 메뉴, 취향, 심지어 삶의 선택까지
모두 나 혼자 짊어져야 한다.
예전엔 가족과 메뉴를 고민하고,
동료와 아이디어를 나누며
결정을 함께 나누는 따뜻함이 있었다.
잘못된 선택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지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며 손 내밀어 줄 이는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즉각 반응하는 중립적인 청자, AI에게 기대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진짜 원했던 건
‘정답’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 주는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다시, 나를 찾아가는 길
자아 탐구를 마친 독자들이여,
이제 질문을 잠시 내려두고, 나가보자
AI가 시를 쓰는 동안,
우리는 빨래를 개며,
고민을 ‘살아보는’ 감각을 되찾아보자.
Image by. Dance of the cupids, Giuseppe Bo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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