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망간 클래식/믿는 구석

믿을 구석 #005 | 움직임의 관성

by 작은 도망 2025. 8. 22.

Image by Midjourney

“우울은 수용성이다.”
“사람의 움직임도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이 두 문장을 좋아한다.

첫 번째는 이런 뜻이다.
우울은 물처럼 흡수되어 쌓이지만, 씻겨 내려보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가끔은 그저 샤워만 해도 괜찮아진다.
누군가에겐 와닿을 말일 수도 있고,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울이 깊어질수록 씻고, 정리하고, 자기 몸을 챙기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두 번째 문장은 더 단순하다.
움직이면 더 움직이고 싶고, 멈춰 있으면 더 멈추고 싶어진다.
몸도 마음도, 결국은 관성을 따른다.

나는 이 원리를 여러 번 체감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다섯 번째 ‘믿는 구석’ 시리즈는 움직임에 대해 쓴다.


1. 물리적 움직임

아들을 핑계 삼아 신나는 노래에 춤을 춘다.
아니, 사실 춤이라기보단 몸짓에 가깝다.
빠른 템포에 맞춰 허우적대는 팔, 햇살 아래서 마음껏 흔드는 우리 둘의 몸짓. 금세 웃음이 터지고 기분이 가벼워진다.

혼자여도 괜찮다. 집에서 혼자 춤판을 벌이다 보면, 웃음 반 허탈함 반으로라도 기분이 전환된다.

땀을 흘린 뒤 샤워를 한다.
우울을 씻어내듯 몸을 박박 닦고, 좋아하는 향으로 욕실을 채운다.
그다음 밀린 집안일을 하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작은 것부터, 움직이면 된다.


2. 시간의 움직임

움직임은 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시간에도 있다.

작은 루틴을 세우고, 실행하고, 달성하는 것.
예를 들어 집에 돌아와 소지품을 제자리에 올려두는 사소한 습관만으로도,
‘내 삶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생긴다.

무기력과 정체감은 그렇게 조금씩 줄어든다.


3. 정서적 움직임

밤에 누우면 생각이 몰려온다.
내가 친구에게 했던 말, 내일의 업무 순서, 날씨와 옷차림,
혹은 창문으로 도둑이 들면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같은 쓸데없는 상상까지. (난 N이니까.)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잠을 방해할 때면, 그냥 일어난다.
종이에 하나씩 적어 내려 가며,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을 줄 세워준다.

그렇게 감정과 생각이 밖으로 빠져나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자존감이 회복된다.
‘나는 내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몸의 움직임, 시간의 움직임, 마음의 움직임.
이 세 가지는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움직이면 더 움직이고 싶고, 멈추면 더 멈추고 싶다.
그렇다면 선택은 간단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

그 작은 움직임이, 내가 믿고 기대 쉴 수 있는 구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