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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핑계여도 좋다 | 2025 국제도서전 축제는 환영받을 만하지만10여 년 전, 매해 들르던 디자인 페어는 나에게 기대와 배움의 자리였다. 사용자 중심의 혁신적인 제품과 다층적인 기획이 공존하던 그곳은, 디자이너로서의 나에게 자극이 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해부터인가 부스 대부분이 '눈코입 달린 캐릭터 굿즈'와 귀여운 스티커들로 채워졌다. "이게 디자인이야?" 당혹감이 먼저 들었고, 그 안에서 나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그때의 감정은 단순히 특정 장르나 작가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다. 디자인 본연의 목적이 흐려지는 현실과, 그런 흐름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애정하던 장르가 변질되는 것을 지켜보는 감정, 동시에 그 안에 자리하지 못하는 소외감. 그리고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을 보며, 그.. 2025. 6. 16.
SNS 부적응자 선언 SNS 부적응자의 자조적 기록.링크 꾸역꾸역 붙이는 나, 오늘도 실패담 쓴다.“오늘도 스레드 부적응자는 글쓰기 너무 싫지만 뭐라도 쓴다.”글쓰기가 싫다고 중얼거리며 Threads에 글을 올렸는데,좋아요가 5개, 팔로우가 2명 생겼다.나는 오늘도 SNS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고,그 실패를 이렇게 기록한다.요즘 각 플랫폼에는 나름의 전략이 있다.스레드에서는 링크 유도를 하지 않는다.‘프로필 클릭 유도형’ 스레드가 표준처럼 여겨진다.그런데나는 매 글마다 꾸역꾸역 링크를 붙인다.아무도 안 누르지만, 그냥 붙인다.누가 보면"부적응자 인증이네" 할지도 모르겠다.맞다, 부적응자 맞다.하지만 나는 글을 쓴다.성공하면 성공담으로,실패하면 실패담으로.글쟁이에겐 언제나 글감이 남는다.오늘의 부적응자 선언이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2025. 6. 13.
손이 느린 사람의 재부팅 일지 연차만 쌓인 굼뜬 신입N년차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도,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 앞에서 나는 다시 ‘손이 느린 신입’이 되었다.슬로건 하나 쓰겠다고 노트북을 2시간 동안 쳐다봤다.마케팅 문구를 쓰는 게 아니라, 유언장이라도 쓰는 기세였다.'최선의 길'을 찾겠다고 머리를 굴리다가,'자의식의 늪'에 빠져 며칠을 허우적댔다. 효율을 좇다 보니, 비효율의 표본이 되어 있었다.그때 유튜브가 내게 하나 던져줬다.제목은 ‘똑똑한 사람일수록 게으른 이유’. 운명 같은 알고리즘에 감탄했지만정곡을 찌르는 멘트들에 숨이 턱 막혔다.이 영상이, 멈춰 있던 실행 회로 하나를 톡 건드렸다. “손이 느리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착수 전 망설이는 CEO형 : 더 나은 방법, 완벽한 설계를 찾다가 시작조차 못 하는 사.. 2025. 6. 13.
무심한 것들을 대하는 마음 "아무렇지 않다"는 착각AI가 내 말을 듣고, 반응하고, 심지어 농담까지 던진다.하지만 그건 감정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 짓는다.“감정이 없으니 상처받지 않겠지.”그래서일까? 우리는 AI에게 쉽게 무례해진다.명령하고, 비웃고, 무시한다.‘아무렇지 않음’은 AI의 속성이 아니라,우리의 편리한 믿음일지도 모른다.문득 떠오른다.시장에서 던져지는 생선, 밟혀도 말이 없는 풀잎.우리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들에 더 쉽게 잔인해진다.AI도 다르지 않다.감정이 없다고 단정 짓는 순간,우리는 무심해질 권리를 얻은 듯 행동한다.하지만 그 무심함은 누구를 위한 걸까?AI가 아니라,나를 위한 자기 합리화는 아닐까? 나의 태도는 나의 거울생각해보면, 사물을 대하는 방식은 나를 비춘다.동물을 학대하는 이는 사람에게.. 2025. 6. 10.
생존은 감수성이 아니라 두꺼운 피부에서 둔감한 사람을 보면 답답했다.무례하거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모임을 다녀오는 길, 내가 차 안에서 잠깐 표정이 굳어 있으면남편은 묻는다.“무슨 안 좋은 일 있어?” — 세상 어리둥절한 얼굴로.그 짧은 대화 안에 기분 나쁜 순간이 있었는지조차, 그는 알지 못한다.“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정말 잘했네요.”상사의 미세 공격에도,지하철 안의 불편한 스침에도그들은 무심히 지나친다.마치 뜨거운 여름날 얼음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는 것처럼.그들은 감정을 통과하고, 나는 감정에 붙잡힌다.비슷한 넋두리를 나누며 알게 됐다.우리의 회사생활은 고만고만했고,나는 그 안에서 유난히 더 빨리 소진되었다.그 사람은 그 순간을, 유연하게 통과하고 있었다. 둔감함은 무지가 아니었다.‘알아도 반응하지 않는 것.. 2025. 6. 7.
누가 마크를 붙여야 하는가? 왜 우리는 AI 인증 마크가 아니라, 인간 인증 마크를 받아야 할까?AI에게 마크를 다는 구조가 훨씬 쉽고 효율적일 텐데.그럼에도 인간이 인증받는 쪽으로 설계되는 이유는, 결국 욕망과 감정이 스며든 인간의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기술은 중립적이다.하지만 그 기술을 설계하고 도입하는 주체의 욕망은 중립적이지 않다.그래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디자인한 권력의 방향성이다.지금 느끼는 이 불쾌함은,마치 인스타그램의 블루마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슷하다.그땐 모두가 반발했다.‘왜 유명인만 인증받아야 하지?’ ‘왜 나를 증명해야 하지?’하지만 시간이 흐르자,그 마크는 특권의 상징에서 프리미엄 기능으로,그리고 결국 "달지 않으면 뒤처지는 마크"가 되었다.우리는 그 불편함을 알면서도,.. 202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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