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망간 클래식/믿는 구석6

믿을 구석 #006 | 나의 최측근 기기들 어린이집에 신입 동생이 두 명 들어왔고,좋아하던 장난감은 낡아서 사라졌다.40개월 아이에게 작은 사건도 큰 파도다.그 파도는 짜증이 되어 나를 덮친다.못난 엄마는 참다 참다 결국 욱한다.비슷한 시기에 나도 결핍을 맞았다.아이폰, 에어팟, 아이패드가 한꺼번에 숨을 거둔 것.세 가지를 다시 살 만큼 애플은 내 편이 아니었다.그래서 선택했다. 힘을 빼고, 한쪽에 집중하기로.가장 좋아하는 음향기기에 투자할 수 있었고,나머지 제품에서 힘을 뺐다.책에 집중할 수 있는 흑백의 'BOOX Poke6'잡음을 걷어낸 갓삼성 '갤럭시 S25'그리고 나의 마지막 쉴드 '바워스앤윌킨스 노캔 헤드셋'아이의 짜증은 여전하지만,육퇴 후 맥주와 헤드셋을 끼면 눈앞이 녹는다.지금 내가 살 수 있는 최고치 행복이다.그래서 나는 이런 말도.. 2025. 9. 4.
믿을 구석 #005 | 움직임의 관성 “우울은 수용성이다.”“사람의 움직임도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이 두 문장을 좋아한다.첫 번째는 이런 뜻이다.우울은 물처럼 흡수되어 쌓이지만, 씻겨 내려보낼 수도 있다는 것.그래서 가끔은 그저 샤워만 해도 괜찮아진다.누군가에겐 와닿을 말일 수도 있고,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하지만 우울이 깊어질수록 씻고, 정리하고, 자기 몸을 챙기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두 번째 문장은 더 단순하다. 움직이면 더 움직이고 싶고, 멈춰 있으면 더 멈추고 싶어진다.몸도 마음도, 결국은 관성을 따른다.나는 이 원리를 여러 번 체감했고,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다섯 번째 ‘믿는 구석’ 시리즈는 움직임에 대해 쓴다.1. 물리적 움직임아들을 핑계 삼아 신나는 노래에 춤을 춘다.아니, 사실 춤이라기보단 몸.. 2025. 8. 22.
믿는 구석 #003 | 나를 둘러싼 공기, 향 믿는 구석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나에게 빼놓을 수 없는 '향'이다.어떤 냄새는 순간을 붙잡아둔다.어떤 향은 기억보다 마음을 먼저 흔든다.그래서 너에게 '향'은 단순한 취향보단'타임라인' 같은 것이다.1. 관계 속의 냄새동생과 나는 이제 따로 살지만서로 마주칠 때면, 이상하게도 예전 '우리 집 냄새'가 난다.그리고 그 냄새는 곧장 어렸을 적 집으로 데려간다.아직 젊었던 부모님의 모습,둘러앉은 거실, 촌스러운 체리색 몰딩이 따라온다.남편은 연애 때부터 '디올의 Sauvage'를 즐겨 뿌렸다.그때는 너무 강하다며 '향수로 샤워했냐'는 핀잔을 줬지만,이젠 그 향이 곧 '그 사람'이 되었다.출산과 함께 우리의 향수는 잠깐 멈췄지만'Sauvage'향을 맡으면 연애 시절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그리고 10년도 .. 2025. 8. 2.
믿는 구석 #002 | 근거 없는 자신감 '정신 승리'프롤로그에 달린 한 줄 댓글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나의 정신적 지주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가장 먼저 떠오른 건 회복탄력성 (Resilience)'이라는 단어였다.많은 사람들에게 『자존감 수업』 이후 익숙한 단어가 되었지만,나에게 이 단어는 조금 다르게 와닿는다.나는 고무공처럼 통통 튀며 바로 일어서는 사람이 아니다.쉽게 무너지고, 오래 주저앉아, 느리게 회복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결국에는 반드시 일어나는 나를 믿는다.어떻게 일어설까를 계산하지 않아도,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다시 나아갈 거라는 믿음.'버틴다'보다는'살아간다'는 태도에 더 가깝다.넘어질 줄 아는 사람은 많지만,일어설 줄 아는 사람은 '일어섰던 경험을 믿는 사람'이다.그 믿음이 내 정신적 허리띠 같은 역할을 한다.나를 세우는.. 2025. 8. 1.
믿는 구석 #001 | 가장 작고 사소한 것들 믿는 구석 첫 번째 이야기.나를 '다시 나답게' 만들어주는 순간들은생각보다 작고, 오묘하고, 예상 바깥에 있다.첫 번째 구석 : 쌓인 글블로그와 브런치에 쌓여가는 글들.남들이 안 읽어도 괜찮다.오늘 하루도 해냈다는, 괜찮다는 기록이니까.마무리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불안을 잠재우고글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된다.두 번째 구석 : 밤의 허기이상하게도 밤의 배고픔은 슬프지 않다.허기진 배를 안고 누워 있는 시간엔 묘한 따뜻함이 있다.나를 가장 잘 안아주는 건 나일 때,그건 종종 '꼬르륵' 소리가 들려올 때다.세 번째 구석 : 정돈된 손톱네일아트를 하며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정돈'이다.엉켜있던 마음이 다듬어지는 기분.손끝이 정리되면 하루가 괜찮아질 것 같은 기대.우연치 않게 보인 손.. 2025. 7. 28.
프롤로그 | 믿는 구석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누군가에겐 사소할지 몰라도내겐 나를 버티게 해주는 구석이 있다.《나의 취향일기: 믿는 구석》은그 작은 구석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기록이다.나를 잘 모르겠는 날,어떻게 나를 안아줘야 할지 막막한 사람에게이 조용한 취향일기가하나의 지도처럼, 작은 서랍장처럼당신 곁에 남았으면 좋겠다.이 시리즈의 출발점은 한 의사의 인터뷰다.《자존감 수업》으로 잘 알려진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롱블랙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자존감은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주관적’ 평가.” 그러니 자존감을 지키는 일은'내가 나에게 어떤 관점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그 관점이 흔들릴 때,사람은 작은 것을 붙잡는다. 윤홍균 전문의의 다소 귀여운 '믿는 구석 리스트' 는 이렇다. 1. 시장표 순댓국 한 그릇 : 5천 원.. 2025. 7. 23.
반응형